책소개
청허당 휴정은 조선이 배출한 최고의 승려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조선 건국 이래 처음 맞이하는 전란의 시대였다. 수도가 유린되고, 임금이 중국으로 망명을 가느냐 마느냐 하는 처지였다. 그 속에서 이 땅의 백성은 왜적의 발굽 아래 철저하게 유린되었다. 또한 휴정은 억불(抑佛)의 시대를 살았다. 유교를 국시(國是)로 삼아 그 외의 종교는 배척되었다. 당시의 승려는 유가 문사들에게 이른바 공공의 적이었다. 그들은 국가정책의 방향을 억불에 맞추어 나갔다. 승려는 사회적 신분이 저하되고, 그것은 승려 집단의 질적 저하로 이어졌다. 산사 불교 시대가 도래하면서 승단(僧團)이 받은 질적 양적 타격은 엄청났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 휴정은 조선조 불교를 부흥시켰다. 산중 승가의 풍토를 바꾸어 놓은 중흥조(中興祖)였다. 그의 문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불제자들은 한국 불교를 지탱한 기둥이었다. 휴정은 제자들을 그들의 깜냥에 맞게 길러 냈다. 유정(惟政)은 실질적인 법의 계승자였지만 당시 나라가 처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승병장 생활을 통해 불교계의 바람막이 역할을 수행했다. 반면 일선(一禪)은 청정 구도의 전형을 보여 주었다. 그는 지리산에 은거하며 평생을 참선과 염불로 일관했다. 출가승의 본분을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태능(太能)은 유정이 떠난 교단을 수호하며 교단 정비에 나섰다.
휴정은 종파가 사라진 뒤 교리적인 면에서 그 맥을 이은 분이다. 1424년 세종(世宗)은 기존 한국 불교의 종파를 선교(禪敎) 양종(兩宗)으로 인위적으로 묶음으로써 불교계를 견제했다. 즉, 조계종·천태종·총남종을 합쳐서 선종이라 하고, 화엄종·자은종·중신종·시흥종을 합쳐서 교종이라 했다. 그리고 이마저도 1565년(명종 20)에 오면 아예 종 자체가 사라졌다. 각 종들은 나름대로 교의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 특징이 사회적 위축과 함께 사라져 갔다. 각 종파의 종지가 서지 않고서는 교단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가 만무했다. 한국 불교 사상사에서 휴정의 주된 업적은 바로 이 흩어져 사라질 위기에 놓인 종지를 일신(一新)해서 정리했다는 점이다. 휴정의 사상은 조사선(祖師禪) 중심의 선교일치론(禪敎一致論)과 염불 정토관(淨土觀)의 강조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현존하는 서산대사의 비문과 ≪동사열전(東師列傳)≫에는 모두 ≪청허당집(淸虛堂集)≫을 8권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현행본 ≪청허당집≫에는 2권본·4권본·7권본만이 있다. 7권본은 현재 숭정 3년(崇禎三年) 경오(庚午, 1630) 경기도 삭녕(朔寧) 용복사(龍腹寺) 간본이 남아 전하며, 4권본은 간년을 알 수 없는 묘향장판(妙香藏板)이 전해지고, 2권본은 강희(康熙) 5년 병오(丙午, 1666) 동리산 태안사(泰安寺) 개판 및 간년을 알 수 없는 몇 가지가 현존하고 있다. 각 판본들은 내용적으로 볼 때 부분적인 첨삭이 있어 혼란을 줄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종합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7권본을 대본으로 삼아 그 혼란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청허당집≫은 한국 불교의 큰 획을 그은 청허휴정의 문집이다. 승속을 넘어 많은 이에게 읽힘으로써 청허대사의 정신이 우리의 삶 속에 계승되는 데 일말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이 책은 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200자평
일흔의 나이에 승병대를 이끌어 조선을 임진왜란의 불구덩이에서 건져낸 애국선사, 사명대사 유정, 정관대사 일선, 소요대사 태능을 길러 낸 조선 불교계의 태두, 서산대사 휴정. 그러나 다만 한 벌 옷과 한 바리때 밥으로 산중에서 살기를 바란 소탈한 산승의 진면목을 그의 문집에서 만날 수 있다.
지은이
청허당(淸虛堂)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조선조 중종 15년(1520)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완산 최씨, 속명은 여신(汝信)이었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열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2세 때 안주 목사 이사증(李思曾)이 서울로 데려가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3년 뒤 지리산을 유람하던 중 쌍계사의 숭인장로(崇仁長老)를 만나 출가하게 된다. 당시 최고 선지식 부용영관(芙蓉靈觀) 대사에게 선을 배우고, 18세에 정식으로 스님이 되어 법명을 휴정(休靜)이라 하였으며, 30세에 승과(僧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교종판사도대사(敎宗判事都大師)와 선종판사도대사(禪宗判事都大師)를 겸하게 된다. 이후 금강산과 지리산을 거쳐 묘향산에서 오래 주석하였는데, 묘향산의 옛이름이 서산이기에 서산대사라 불리게 되었다. 선조 37년(1604) 정월 23일에 원적암(圓寂菴)에서 임종게를 남기고 좌탈입망하였다. 세수 85세 법랍 67세였다. 저서에 ≪선교석(禪敎釋)≫, ≪선교결(禪敎訣)≫, ≪유가귀감(儒家龜鑑)≫, ≪도가귀감(道家龜鑑)≫, ≪심법요초(心法要抄)≫, ≪운수단(雲水壇)≫, ≪청허당집(淸虛堂集)≫이 남아 전한다.
옮긴이
배규범은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한국학 및 불가 한문학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삼아,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검토 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희대(학진연구교수), 동국대(학진연구교수),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KF객원교수)을 거쳐 현재 중국 북경공업대학 한국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해외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전파라는 새로운 뜻을 세우고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잡체시 연구≫,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외국인을 위한 한국 고전문학사≫, ≪속담으로 배우는 한국 문화 300≫ 등이 있고,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사명당집≫, ≪허정집≫, ≪허응당집≫, ≪청허당집≫, ≪무의자 시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집≫, ≪초의시고≫ 등이 있다.
차례
임하사 林下辭
산중사 山中辭
청허가 淸虛歌
회포를 읊다 詠懷
봄날의 회포를 읊다 春日詠懷
약산의 띳집 정자 藥山茅亭
입춘 立春
감사 이식의 시를 빌려 次李監司拭韻
벽천 스님에게 贈碧泉禪和子
유정 스님에게 贈惟政大師
욱 스님에게 贈昱禪子
인수 스님과 헤어지며 贈別獜壽禪子
명감·상주·언화와 여러 문도에게 示明鑑尙珠彦和諸門輩
밤이 되어 동호에서 머물며 東湖夜泊
저녁 되어 남쪽 바다에서 머물며 南溟夜泊
초가 草屋
젓대 소리를 들으며 聞笛
숭의 스님께서 찾아왔기에 崇義禪子訪淸虛
감흥 感興
준 스님 俊禪子
요천을 지나며 過蓼川
어부 漁翁
북쪽 변방에서 遊塞北
화개동 花開洞
옛 절을 지나며 過古寺
벗을 만나 會友
일암 一巖
도중 유감 途中有感
누각에 올라 登樓
채옹정에 묵으며 宿蔡邕亭
단군대에 올라 登檀君臺
행주 스님에게 示行珠禪子
세월 감을 탄식하며 歎逝
봄 감상 賞春
봄을 슬퍼하며 傷春
망고대 望高臺
불일암 佛日庵
가야산을 노닐며 遊伽耶
조실 스님을 찾아가다 訪祖室
청학동 폭포 靑鶴洞瀑布
서산을 노닐며 遊西山
일 스님에게 贈一禪子
홍류동 紅流洞
목암 題牧庵
중양절에 남루에 올라 重陽上南樓
탐밀봉 探密峯
양양 가는 길에 襄陽途中
느낀 바가 있어 남해옹에게 답하다 答南海翁因事有感
이 수재에게 贈李秀才
무릉동을 노닐며 遊武陵洞
혜은 스님 惠訔禪子
성오 가는 길에 省塢途中
고개에 올라 두류산을 생각하며 登嶺憶頭流
산에 살며 山居
법광사를 지나며 過法光寺
통결 通決
행원 杏院
귀양객을 방문해 訪謫客
높은 곳에 올라 가을을 감상하며 登高賞秋
우연히 읊다 偶吟
세상을 탄식하며 嘆世
봉래산 느낌 蓬萊即事
여관을 지나며 거문고 소리를 듣고 過邸舍聞琴
부휴자 浮休子
청량사의 영첩에 쓰다 題淸凉影帖
감회가 있어 有懷
조 학사와 함께 청학동을 노닐며 與趙學士遊靑鶴洞
숨어 사는 사람 隱夫
송암 스님 松巖道人
구름 속으로 떠나는 감 스님을 전송하며 送鑑禪子之雲遊
강월헌 江月軒
초가 草屋
무상 거사에게 贈無相居士
세상을 탄식하며 嘆世
영정 스님에게 내 마음을 보이다 咏懷示永貞禪子
재송 스님을 칭찬하며 讚栽松道者
일암 스님에게 贈一庵道人
인경구탈 人境俱奪
사야정 四也亭
염불승 念佛僧
봉성 땅을 지나다 낮닭 울음소리를 듣고 過鳳城聞午鷄
덕의 스님에게 贈德義禪子
법장 스님 法藏大師
내은적 內隱寂
고의 古意
심 스님의 행각 心禪子行脚
약속한 그대는 아니 오고 有約君不來
낙양에서 생긴 일 洛中卽事
귀녕 가는 태희 사미 太熙沙彌歸寧
좌주의 물음에 답하다 答座主問
도능 스님에게 贈道能禪子
새인 스님이 게송을 구하기에 賽仁禪子求偈
신 상사의 시운을 빌려 次申上舍韻
찬불 讚佛
유교와 도교를 찬하다 讚儒道
달마 진영에 찬을 붙이다 讚達摩眞
달마도강도 達摩渡江圖
백운산에 올라 읊으며 登白雲山吟
죽은 스님을 곡하다 哭亡僧
쌍계사 방장 스님 雙溪方丈
회포를 읊다 咏懷
가도 賈島
화산 은자 花山隱者
운계동을 찾아가다 尋雲溪洞
지나는 봄 안타까워 惜春
도반과 헤어지며 別山友
용성 사는 김 악사를 만나 성원에서 묵다 遇龍城金樂士宿星院
백전에서 묵으며 宿栢巓
삭발 削髮
일정 스님을 전송하며 送一晶禪子
죽은 교산을 곡하며 哭喬山
꿈에서 깨어나 夢覺
여름날 夏日
이 수재의 시운을 빌려 次李秀才韻
감호대 題鑑湖臺
죽은 벗을 탄식하며 亡友嘆
순 스님의 책 題淳師卷
은계의 시운을 빌려 次隱溪韻
윤 방백의 시운을 빌려 次尹方伯韻
가을 밤 秋夜
그림자를 보고 느낌이 있어 顧影有感
삼몽사 三夢詞
휴량승을 조롱하며 嘲休糧僧
곡지 曲池
산을 나서는 영 스님을 전송하며 送英庵主出山
김 신사의 내방에 감사하며 謝金信士來訪
어떤 일을 겪은 뒤 느낌이 있어 因事有感
서래곡 西來曲
한강을 노닐며 遊漢江
소나무와 국화를 심으며 栽松菊
꿈에서 이백의 무덤을 지나며 夢過李白墓
고향에 돌아와 還鄕
병들어 病懷
도성으로 들어가는 심 스님을 경계하며 誡心禪子入城
이 죽마의 내방에 감사하며 謝李竹馬來訪
낮에 화촌에서 쉬며 花村午憩
임석천의 시운을 빌려 次林石泉韻
자조 自嘲
가을을 감상하며 賞秋
환향곡 還鄕曲
각행 스님 覺行大師
창해에 올라 上滄海
전도음 傳道吟
임종게 臨終偈
경술년 가을, 풍악산 향로봉에서 주석하고 있었다… 庚戌秋 住楓岳山香爐峯…
법현 스님에게 示法玄禪子
지해 스님이 선게를 청하기에 단두화로 답하다 智海禪子索禪偈以斷頭話報之
재상인 소세양께서 진기대사에게 준 시운을 빌려 次蘇相世讓韻贈眞機大師
채씨의 남편을 천도하는 게송 蔡氏薦夫伽陁
자락가 自樂歌
완산 노 부윤에게 올리는 글 上完山盧府尹書
사형에게 답하는 글 答師兄書
스님을 부르다 招禪子
김 거사의 죽은 딸을 곡하며 哭金居士女
천옥 스님 天玉禪子
성운 스님에게 示性雲長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하하하 웃으며 천지간에 섰으니
푸른 물결 아득히 배 떠나가네.
아침나절 국화는 눈물 머금었고
한밤중 단풍잎은 가을을 흐느끼네.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은 모두 헛된 이름일 뿐.
결박을 벗으니 어젯밤 꿈과 같은데
살길이 트이고 또 트이는구나.
하늘과 땅을 쥐락펴락하면서
해와 달을 삼켰다 토했다 했지.
바리때 하나와 한 벌 옷으로
씩씩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네.
●맑은 연못 텅 비었으니
산 그림자 환하게 비치었네.
새를 보고 또 물고기도 보니
날고 잠기는 것도 제 본성인걸.
저 샘물 콸콸 흘러내리니
빛과 그림자 모두 환히 비었도다.
분명히 다른 물건이 아니거늘
놀랍게도 하늘이 한 번 웃는 소리로다.
●천 가지 만 가지 생각들이
붉은 화로에 한 점 눈과 같네.
진흙 소가 물 위를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다 찢어진다.